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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문학 산책

[물에 얽힌 옛이야기]
압록강이 생겨난 이야기

신현배 시인, 아동문학가

신현배
시인, 아동문학가
4201708@hanmail.net

아주 오랜 옛날, 한반도 북쪽에는 압록강이란 강이 없었습니다.
한반도 북쪽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산 근처에는 민가가 없어 사람들이 모여 살지 않았습니다. 백두산 숲속에 흩어져 사는 것은 호랑이·곰·사슴·여우·토끼·다람쥐 등의 길짐승과, 꿩·공작새·딱따구리·올빼미·멧닭·기러기 등의 날짐승이었습니다.
백두산 숲속에는 많은 동물들이 있지만 가장 힘세고 사나운 동물은 호랑이였습니다. 호랑이는 산중의 왕으로서 백두산 동물들을 다스렸습니다.
어느 해 여름, 백두산에 큰 가뭄이 들었습니다. 동물들은 마실 물이 없어 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어느 날 여우가 호랑이를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대왕님, 우리 백두산 동물들이 가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어디서 물을 끌어오기만 하면 살 수가 있습니다. 기러기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백두산 동쪽 산꼭대기에 ‘천지’라는 연못이 있다고 합니다. 그 천지 물을 이곳으로 끌어온다면 우리는 가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호랑이는 여우의 말을 듣고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네가 천지에 가서 그 물을 끌어오너라. 너는 재주도 많고 말솜씨도 좋으니…….”
여우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대왕님, 저 혼자서는 힘든 일입니다. 대왕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다리가 짧고 꼬리가 길어 걸음이 느리지 않습니까? 그 대신 다리가 길고 걸음이 빠른 꽃사슴을 불러 주신다면 꽃사슴과 함께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오, 그래? 알겠다.”
호랑이는 꽃사슴을 불러 명령을 내렸습니다.
“꽃사슴아, 여우랑 같이 백두산 동쪽에 가서 천지 물을 이곳으로 끌어오너라. 네가 이 일을 완수한다면 큰 상을 주마.”
꽃사슴은 호랑이의 명령을 받고 잠시 망설였습니다.
꽃사슴도 기러기에게 이야기를 들어 백두산 천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백두산 천지는 옥황상제를 모시는 선녀들이 날마다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목욕을 하는 곳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곳이기에 옥황상제는 거북이를 경비대장으로 임명하여 그곳을 밤낮없이 지키게 했습니다. 그러니 천지 물을 끌어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꽃사슴은 호랑이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그랬다가는 그 자리에서 호랑이밥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알겠습니다. 여우와 함께 가서 천지 물을 끌어오겠습니다.”
꽃사슴은 이렇게 말하고 여우와 함께 백두산 천지를 향해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떠나기 전에 동물들이 몰려나와 눈물로 전송했습니다.
다람쥐가 꽃사슴과 여우에게 삼씨를 주며 말했습니다.
“배고프거나 목마를 때 삼씨를 입에 넣고 빨아. 그러면 배고픔과 목마름이 가실 거야.”
공작새는 자기 깃털을 뽑아 꽃사슴과 여우에게 나눠 주며 말했습니다.
“길을 가다가 벼랑을 만나거나 오르내릴 수 없을 때 깃털을 훅 불어. 그러면 날아오르거나 날아 내릴 수 있을 거야.”
드디어 꽃사슴과 여우는 백두산 천지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걸음이 빠른 꽃사슴이 앞장서고 여우가 그 뒤를 따랐습니다.
길은 멀고 험했습니다. 금세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습니다. 그때마다 삼씨를 입에 넣고 빨았습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배고픔과 목마름이 사라졌습니다.
길을 가다가 벼랑을 만나면 깃털을 훅 불었습니다. 그러면 저절로 몸이 날아올라 벼랑을 가볍게 뛰어넘었습니다.
꽃사슴과 여우는 그렇게 사흘 밤낮을 계속 뛰어 백두산 천지에 올랐습니다. 천지는 기러기에게 들은 대로 크고 웅장했습니다. 얼마나 물이 많은지 별천지에 온 것 같았습니다.
‘듣던 대로 대단하네. 저 푸른 물을 조금만 끌어내려도 우리 백두산 숲속 동물들을 살릴 수 있을 텐데.’
꽃사슴과 여우는 이런 생각을 하며 천지 물가를 거닐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천지 물을 끌어내릴 것인가.’ 궁리를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꽃사슴과 여우 앞에 거북이 나타나 호통을 쳤습니다.
“웬 놈들이냐?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얼쩡거려?”
꽃사슴은 거북이 천지를 지키는 경비대장임을 알아보고 그 앞에 엎드려 애걸복걸했습니다.
“거북님, 저희들의 사정을 들어주십시오. 백두산 기슭에 있는 동물들이 가뭄 때문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이 천지 물을 백두산 기슭에 흐르게 해 주십시오.”
거북은 꽃사슴을 위아래로 훑어보았습니다. 예쁜 꽃사슴을 보자 그는 군침을 흘렸습니다. 그러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꽃사슴에게 말했습니다.
“천지 물을 백두산 기슭에 흐르게 해 달라고? 알겠다. 옥황상제께 너희들의 사정을 아뢰도록 하지.”
“그게 정말이에요? 고맙습니다.”
꽃사슴과 여우는 감격하여 거북에게 절을 했습니다.
거북이 꽃사슴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옥황상제께 보고문을 써야 하니 꽃사슴은 나를 따라오너라. 여우는 여기 남아 있고.”
거북은 천지 연못 중앙에 있는 자기 집으로 꽃사슴을 데려갔습니다.
꽃사슴이 집 안으로 들어오자 거북은 철대문을 잠갔습니다. 그러고는 꽃사슴을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 징그럽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옥황상제께 보고문은 무슨 보고문……. 예쁜 너를 보니까 가슴이 뛰는구나. 이리 가까이 오너라.”
거북은 꽃사슴을 껴안으려고 두 손을 뻗었습니다. 그 순간, 꽃사슴은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거북은 꽃사슴에게 흑심을 품고 그를 자기 집으로 데려간 것입니다.
꽃사슴은 자기를 겁탈하려고 달려드는 거북을 온힘으로 밀어제쳤습니다. 하지만 힘이 좋은 거북을 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거북의 집 철대문을 누군가 힘껏 두드리며 소리쳤습니다.
“천지 수비대장님, 선녀들이 목욕을 하러 내려왔습니다. 왜 영접하지 않고 집 안에 계십니까?”
거북은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하필 이 중요한 순간에……. 에이, 씨!”
거북은 혼자 투덜거리며 꽃사슴을 집안에 가둬 둔 채 선녀들을 맞이하러 갔습니다. 물론 철대문은 밖에서 단단히 잠갔습니다.
꽃사슴은 거북의 집에서 도망칠 수 없었습니다. 철대문이 잠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녀들이 내려왔다는데, 그들에게 도움을 청해 이곳에서 나갈 수 없을까?’
꽃사슴은 혼자 궁리를 해 보다가 창문을 열어 삼씨를 천지 물에 띄웠습니다. 삼씨는 천지 물을 따라 선녀들이 목욕하는 곳으로 흘러갔습니다.
“이게 뭐지? 삼씨가 왜 여기에…….”
선녀들이 묻자 당황한 거북은 이렇게 둘러댔습니다.
“제가 띄운 겁니다. 목욕할 때 살결이 희어지게 하거든요.”
삼씨를 천지 물에 띄워 보내도 아무 소식이 없자, 꽃사슴은 공작새가 준 깃털을 천지 물에 띄웠습니다. 선녀들을 깃털을 보고 또 물었습니다.
“깃털이 왜 여기에 흘러 왔죠?”
거북이 떠듬떠듬 말했습니다.
“아, 예. 그, 그것은 목욕할 때 심심할까 봐 눈요기 삼으시라고…….”
꽃사슴은 깃털을 띄워 보내도 아무 소식이 없자, 이번에는 자기 꼬리를 입으로 물어 끊었습니다. 그 순간, 피가 철철 흘렀습니다. 꽃사슴은 피 묻은 꼬리를 천지 물에 띄워 보내며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선녀들은 천지 물을 물들인 피와, 목욕하는 곳으로 흘러 온 꼬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꽃사슴이 대성통곡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이죠? 거짓말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 봐요.”
선녀들이 다그치자 거북은 할 수 없이 자기 집에 꽃사슴을 가둬 두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선녀들은 거북을 앞장 세워 그의 집에 가서 꽃사슴을 만났습니다.
꽃사슴은 거북에게 당한 일을 선녀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선녀들은 꽃사슴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거북을 엄하게 꾸짖었습니다.
“천지 경비대장으로 임명했더니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해? 용서할 수 없다. 옥황상제께 아뢰어 너를 해직하고 감옥에 가두도록 하겠다.”
그제야 꽃사슴은 선녀들에게 자기가 여우와 함께 왜 천지에 왔는지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선녀들은 가뭄에 시달리는, 백두산 숲속에 사는 동물들이 불쌍했습니다. 그래서 옥황상제 모르게 천지 연못 속에 구멍을 하나 뚫었습니다. 그러자 천지 물이 그 구멍으로 나와 백두산 기슭으로 흘러 내렸습니다. 그리하여 백두산 숲속 동물들은 가뭄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물은 굽이굽이 산벼랑 협곡을 따라 흐르기에 ‘벽강’이라 불리었습니다. 그런데 그 벽강이 물속에서 갓 나온 숫오리처럼 푸르러, 사람들은 이 강을 ‘압록강(鴨綠江)’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