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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뒤늦은 제21차 한·일 생태공학
공동세미나 이야기

김명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

김명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
narrowgate@kic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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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며]

이번 세미나 참석의 결정적 동기는 막연한 호기심, 그리고 마치 숙제처럼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어떤 한 장소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쉰이라는 나이에 이르는 동안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 나에게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라는 말은 평생 현실이었다. 학술대회와 회의, 여행 등으로 여러 나라를 다녀왔지만, 정작 일본 땅은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항상 일본이라는 나라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있었다. 여기에 더해, 일본 기후현의 ARRC(Aqua Restoration Research Center)는 내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하천실험센터(River Experiment Center) 설립에 가장 큰 영감과 동기를 제공한 시설로, 설립을 위한 연구 단계부터 지금까지 하천실험센터와 깊은 인연을 맺어온 나에게 언젠가는 꼭 한 번 방문해야 할 하나의 작은 숙제와도 같은 곳이었다. 그러기에 이번에 개최하는 제21차 한·일 생태공학 공동세미나의 개최지가 ARRC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세미나 참가를 신청했다.
10월 23일 김해공항, 태어나 처음으로 나고야로 향하는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 길지 않은 비행시간이 새로운 여정에 대한 기대감으로 잔뜩 고양된 내 마음 때문인지 더 짧게 느껴졌다. 나고야 주부공항 도착 후 기차에 탑승해 기후역으로 가는 동안, 창밖에 스쳐 지나가는 일본의 산과 들, 하천, 마을의 모습은 분명히 처음 보는 풍경임에도 괜스레 익숙하게 느껴졌다. 오전부터 시작되는 세미나 때문에 하루 일찍 기후에 도착한 나와 일행이 가장 먼저 찾은 곳 은 전망대였다. 일본을 자주 다녀온 나의 동행인의 강력한 추천에 이끌려 전망대에 올라갔다. 사실 당시에는 이렇다 할 만큼 큰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생전 처음 방문한 일본의 풍경인지라 무심코 몇 장의 사진을 스마트폰에 담았다. 그리고 그때 기후 시내를 지나는 나가라강의 풍경을 우연히 담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 사진 한 장이 일본이라는 나라와 그곳의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한·일 생태공학 공동세미나의 의미와 그 안에서의 만남에 대해 되새기는 중요한 열쇠가 된 것 같다. 그때 나를 전망대로 이끈 나의 동행에게는 이글을 빌어 새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림 1. 전망대에서 바라본 기후현을 지나는 나가라강
그림 1. 전망대에서 바라본 기후현을 지나는 나가라강
그림 2. 세미나의 시작을 기다리는 참가자들
그림 2. 세미나의 시작을 기다리는 참가자들

[ 세미나 첫날: 다른 나라, 다른 강, 다른 사람들, 그러나 닮은 고민]

기후역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도착한 ARRC 주차장에서 가장 먼저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연구시설이라기보다는 생태 공원에 가까운 센터와 그 주변 풍경이었다. 어디까지가 연구센터이고 어디까지가 시민이 이용하는 수변공원시설인지 모를 정도로ARRC는 기소강 및 강 주변의 다른 시설들과 어우러져 있었다. 이날 오후에 진행된 ARRC의 실험 수로 견학 때, ARRC는 단순한 전시·견학 시설이 아니라 실규모의 수공·생태 실험시설이라는 점을 유독 강조한 견학 안내자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가볍게 웃었던 이유가 이때의 첫인상 때문이 아닌가 싶다. 조금 걸어서 도착한 ARRC의 회의실에는 이미 먼저 도착한 일본의 연구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미나 등록을 마친 후 일본 연구자들과 짧게 인사를 나누면서 자리 착석한 뒤 PWRI(Public Works Research Institute, 일본토목연구소)의 Keigo Nakamura 박사의 환영사를 시작으로 “연구와 실천을 통한 하천환경 복원과 하천 문화 유지(Restoring River Environments and Sustaining River Culture through Research and Practice)”라는 주제의 이번 세미나가 자연스럽게 개최되었다.
니가타 대학의 Yoichi Kawaguchi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한 첫 번째 세션에서는 나고야 대학의 Yuexia Zhou 교수가 첫 발표를 시작했다. Zhou 교수는 3차원 LiDAR 측량 수변림 포인트 클라우드 자료를 통해 얻은 유동 방향의 유효 투영 면적에서 항력항을 환산하고, 이를 수치 모형에 적용하여 수심 및 유속 분포 결과가 적절하게 일치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후 다음 발표에서는 서울대학교의 김대현 교수가 섬진강에서의 극한 홍수 이후 하천 형태 변화에 대하여 발표하였다. 이 발표에서 김대현 교수는 섬진강 본류를 대상으로 전체, 상류, 하류 세 구간의 퇴적 및 침식을 분석하고, 구간에 따라 하천 변이의 주요 지배 인자가 바뀌는 것을 보여주었다. 김대현 교수는 발표를 통해 극심한 홍수 이후 하천의 지형학적 변화를 분석할 때 구간을 나눌 필요가 있음을 제안하면서 하천 상·하류 간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동시에 보는 관점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질의응답에서 나고야 대학의 Tetsuro Tsujimoto 교수는 하천을 분할된 연속체(segmented continuity)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이 연구의 필요성을 가장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표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어진 Tashiro 교수의 발표는 범람원 코어를 통해 지난 수십 년간의 하천 주변의 환경 변화를 거꾸로 읽어내는 연구에 관한 내용이었다. 중국의 양쯔강과 일본의 이비가와강에서 채취한 코어 분석 결과를 통해 Tashiro 교수는 “홍수와 토지이용, 산업화가 코어 안에서 층별로 기록된다”고 설명했다. “코어 속의 각각의 층들이 어느 해의 홍수, 어느 시기의 가동된 공장, 어느 시기의 토지이용 상황 등을 보여준다.”라는 설명을 들으면서 범람원에서 얻은 코어의 분석을 통해 지형·수질·정책·역사를 체계적으로 한꺼번에 읽어내고자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어서 진행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장은경 박사의발표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하천실험센터의 실규모 수로에 실물에 근접하는 목본류 식생 모형 패치를 설치하고, 그 전후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실제로 세심하게 측정한 연구였다. 장은경 박사는 LiDAR와 음향 기반 측정 방식으로 얻은 식생 모형 패치 주변의 시간에 따른 세굴과 퇴적 양상을 분석하여, 식생 군락 전면부와 측면부는 조립화되고, 내부 및 하류 구간은 세립화되는 특성을 보여주면서 식생 군락이 하천의 지형과 퇴적물을 재구성하는 식생과 하상의 상호작용에 관한 실험적 증거를 제시하였다.
장은경 박사의 발표를 듣고 있다 보니 앞에서 발표한 Zhou 교수의 발표가 생각 났다. 장은경 박사는 실물에 근접하는 목본류 군락을 대형 수로에 설치해 세굴과 퇴적의 변화를 관찰했고, Zhou 교수는 측량을 통해 얻은 포인트 클라우드를 통해 식생의 3차원 항력 구조를 정량화했다. 그냥 보기에는 이 두 사람의 실험방법도, 실험하는 장소도 달랐지만, 결국 두 사람 모두 “식생이 하천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정량적으로 표현할 것인가?”라는 공통된 질문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3. 세미나 구두 발표(서울대학교 김대현 교수)
그림 3. 세미나 구두 발표(서울대학교 김대현 교수)
그림 4. 세미나 구두 발표 (오사카 공립대 Yasuhiro Takemon 교수)
그림 4. 세미나 구두 발표 (오사카 공립대 Yasuhiro Takemon 교수)

이후 요도가와 하구에서 사라진 조간대를 토사 투입(보충)으로 서서히 되살린 사례에 관한 Yasuhiro Takemon 교수의 발표를 마지막으로 첫 번째 세션을 마치고, 잠깐의 휴식 뒤에 서울대 김대현 교수를 좌장으로 하는 두 번째 세션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 세션의 첫 발표는 국립생태원의 옥기영 선임연구원의 발표로 시작되었다. 옥기영 박사는 금강 하구의 갯벌에서 채취한 퇴적물 코어를 분석하여, 장기간의 하천 지형 형성과 변화를 추적하는 연구에 대해 설명하였다.
옥기영 박사의 연구도 하천만 다를 뿐 Tashiro 교수의 연구와 닮아 있었다. 두 연구 모두 하천이 퇴적층에 남긴 과거의 정보를 읽어내어 이를 이용해 하천 유역 관리를 위한 치수·환경·생태에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하천을 이해하고 관리하고자 하는 비슷한 목표를 추구하고 있었다.
이후 쿠마모토 대학의 Hiroshi Cho 교수는 발표를통해 남아시아 하천에서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수제구조물인 반달(Bandal)과 일본의 전통 수제 세이규(Seigyu)를 접목한 자연기반해법(NbS, nature-based solutions)을 제시하였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나의 발표도 있었다. 나는 베타글루칸을 혼합하여 만든 바이오 토양을 임진강 제방에 도포하는 공법으로 친환경성과 안정성의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한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이어서 발표된 도쿠시마 요시노가와 하류에서 eDNA 기법을 활용하여 어류 생물다양성 패턴을 분석한 Kawaguchi 교수의 연구와 금강 수계를 대상으로 ANFIS(Adap-tive Neuro-Fuzzy Inference System)를 이용해 저서무척추동물의 서식 적합도 곡선을 구축한 연세대 한상진 학생의 연구도 닮아 보였다.
이후에 이어진 포스터 발표에서는 발표자들이 각자의 연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도시락으로 마련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마지막 세 번째 세션이 시작되었다.
한국교통대학교 장창래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세 번째 세션에서는 나고야대 학교 Tsujimoto 명예교수가 “Fluvial Processes Supporting River-Ecosystem Integrity” 라는 제목의 기조 강연을 통해 하천의 하상·유사 이송·식생 상호작용이 어떻게 하천 생태계의 통합성을 지탱하는지를 설명했다. 하천의 홍수와 퇴적이 재해를 일으킴과 동시에, 서식처와 생태계를 유지시킨다는 일본의 원로 연구자의 이야기에서 자연이 일으키는 재난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조화롭게 자연과 공존하는 일본 고유의 문명을 발전·유지 시켜 온 일본인들의 철학이 느껴졌다.

그림 5. 포스터 발표(KICT 이찬주 연구위원)
그림 5. 포스터 발표(KICT 이찬주 연구위원)
그림 6. 포스터 발표(나고야 대학 Takashi Tashiro 교수)
그림 6. 포스터 발표(나고야 대학 Takashi Tashiro 교수)

이어서 공주대학교의 김이형 교수는 기조 발표에서 PFCs, 미세플라스틱, 항생제 등의 오염물질들이 기후변화와 결합하여 수생생태계에 어떻게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주었고, 다음으로 기후대학의 Morihiro Harada 교수는 나가라강의 수온 분포를 분석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Harada 교수는 나가라강 현장의 어민 조합과 함께 구축한 수온·유량 관측망을 설명하면서, 댐이 없는 나가라강의 홍수와 어류 이동, 어업활동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 되어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광주과학기술원의 김은석 교수는 한국 하천의 침입 덩굴식물인 환삼덩굴의 서식 선호와 경쟁력을 분석하여, 하천의 복원·식재 설계에서 “어떤 토착 다년생을 심어야 환삼덩굴을 억제할 수 있는가”라는 매우 실무적인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세미나 발표의 마지막 세션으로 종합토론이 있었는데, 오사카 공립대학 Takemon 교수와 연세대학교 최성욱 교수가 이날의 모든 발표를 하천 관리의 동적 측면, 유역 규모의 관리 측면, 장기 역사적 측면, 식생 관리 측면, 연구 기술적 측면의 5가지 측면으로 분류하여 정리해 주었다. 두 교수는 각각의 발표가 이 다섯 가지 분류 안에서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간략하게 짚어주고 오래도록 세미나를 이어온 양국 연구자들의 노력과 이번 세미나를 준비한 조직위원회의 수고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다음 해에 한국에서 이 세미나가 계속 이어질 것과 더 발전하기를 기대한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모든 발표와 토론이 마무리되었다.

그림 7. 세미나 토론(Hiroshi Cho 교수와 최성욱 교수)
그림 7. 세미나 토론(Hiroshi Cho 교수와 최성욱 교수)
그림 8. 정리 및 제언(최성욱 교수와 Yasuhiro Takemon 교수)
그림 8. 정리 및 제언(최성욱 교수와 Yasuhiro Takemon 교수)

[ ARRC 실험수로에서 물과 흙 사이의 자연 위를 걷다]

발표와 토론을 마친 이후 곧바로 진행된 ARRC 실험수로 견학에서는 상·중·하류로 나뉜 약 800m 길이의 대형 실험 수로와 곳곳에 배치된 저류지와 범람원, 다양한 호안블록 그리고 그 사이에 다양한 설비와 센서들을 볼 수 있었다.
ARRC는 단순히 “대형 수로만 있는 연구시설”이 아니라, 실험과 현장을 바로 연결하는 실증 플랫폼에 가까워 보였다. “이 구간은 하상 변화와 어류 서식처를 동시에 보는 곳이고, 이쪽은 범람원 식생과 홍수 재현 실험을 하는 곳이고…”라고 안내를 맡은 PWRI의 Yuta Mizoguchi 박사가 설명을 계속하는 동안, 나는 수로와 주변 시설들이 ‘실험장’이기보다는 하나의 작은 유역 같다고 느꼈다.
Mizoguchi 박사는 이곳이 단순한 전시·견학장이 아닌 “실규모의 수공·생태 실험장”이라고 강조하면서, 하천의 상·중·하류 구간이 재현된 대형 인공수로에서는 홍수 시 하도 형상과 서식처 구조가 어떻게 바뀌는지, 다양한 호안블록과 같은 하천 구조물이 실제로 어떤 수리·생태적 효과를 발휘하는지 장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ARRC의 실험수로의 활용 방식은 실용적이고 현장 지향적이었다. 수로는 실험을 위해 만들어진 인공적인 구조물이었지만, 수로의 생태실험에서는 더 이상의 인공적인 요인을 허용하지 않고자 하는 일본 연구자들의 노력이 돋보였다. 내가 보기엔 “축소된 실제 하천”을 만들어 놓고 거기서 데이터를 수확하는 모습이었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나는 과거 하천실험센터의 예산요구 당시부터 설계와 준공까지의 센터 설립 업무와 연구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바가 있었다. 당시 하천실험센터의 실험 수로 중 하나는 “ARRC처럼 장기 생태 모니터링 실험이 가능한 수로로 만들려고 시도했던 기억이 잠시 회상되었다. 결국 당시의 다양한 주변 여건으로 인해 하천실험센터는 ARRC와 같은 자연유하 방식의 하천 생태 모니터링 실험 수로를 만들 수 없었다. 그 당시 우리도 가지고 싶어 했던 모델을 실제 눈으로 확인하면서, 현재 우리 하천실험센터의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하천실험센터가 얼마나 잘 운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디까지 욕심을 내야 하는지”를 조용히 되짚어보는 시간이었다.

그림 9. ARRC의 실험수로 견학
그림 9. ARRC의 실험수로 견학
그림 10. ARRC의 호안블록 모니터링 시험 구간
그림 10. ARRC의 호안블록 모니터링 시험 구간
그림 11. ARRC 실험수로 견학의 마지막
그림 11. ARRC 실험수로 견학의 마지막
그림 12. ARRC 실험수로 견학을 마치며 돌아오는 참가자들
그림 12. ARRC 실험수로 견학을 마치며 돌아오는 참가자들

[세미나 둘째 날, 나가라강을 따라 올라가며]

둘째 날인 10월 25일에는 아침 일찍부터 나가라강 현장 답사가 이어졌다. 한국과 일본의 연구자를 태운 작은 버스는 기후역을 출발해 나가라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조금 번외의 이야기이긴 한데, 우리를 태운 버스는 너무 좁았다. 참가 인원수에 딱 맞춘 버스에 한국과 일본의 연구자들이 다닥다닥 붙어 이동한 그때의 상황은 다시 경험하고 싶진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계속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어쩌면 그때야말로 사람을 태우는 버스의 좌석조차도 낭비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본의 진짜 문화를 접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각설하고 이렇게 일본의 문화체험(?)을 하며 도착한 첫 정차지는 나가라교 일대였다. 하천의 이름으로 지어진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나가라강은 넓은 하폭에 수심은 그리 깊어 보이지 않았다. 안내는 기후대학의 Harada 교수가 맡았다. Harada 교수는 이 구간이 과거에는 몇 갈래로 나뉘어 흐르던 하도였고, 20세기 초 개수사업을 통해 단일 하도로 정리되었다고 설명했다. 강을 바라보는 사이 설명은 우카이로 옮겨 갔다. 우카이는 목에 줄이 묶인 가마우지가 은어를 잡게 하고, 그 후에 목에 걸린 은어를 다시 뱉게 하여 어획하는 나가라강을 상징하는 1,300년 넘게 이어온 어업이다. 지금은 관광과 문화유산의 성격이 더 강하지만 과거에는 생계형 어업이었다고 한다. 이 생계형 어업이 지금은 강의 과거를 기억하며 즐기는 문화로 이어진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론 전통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지켜온 그 모습이 멋있게 느껴졌다.

그림 13. 셔틀버스를 안에서
그림 13. 셔틀버스를 안에서
그림 14. 홍수 방어를 위한 나가라교 마을 차수문
그림 14. 홍수 방어를 위한 나가라교 마을 차수문
그림 15. 우카이를 설명하는 Harada 교수

그림 15. 우카이를 설명하는 Harada 교수

Harada 교수는 나가라 강에 설치된 수온계를 보여주면서 일 평균 수온이 약 18 ℃ 아래로 떨어지면 은어와 같은 어종의 하류 회유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이어서 댐이 없는 하도의 특성으로 인해 우카이 선착장과 관람시설, 그리고 주변의 마을은 홍수에 잠길 것을 전제로 계획되었으며, 마을 주민들은 매년 홍수의 위험을 나누는 방식으로 살아가기에 강 옆에 사는 것이 아니라 강 안에서 사는 느낌이 더 강하다고 말했다. 마을 입구와 건물 입구마다 설치되어 있는 작은 차수문들은 이러한 이들의 삶을 여실 없이 보여주었다. 나가라교 부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21세기에도 댐이 주는 편리함을 버리고 자연 그대로의 하천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하천과 치수, 도시, 전통, 문화, 산업이 하나로 어우러진,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하천 관리가 어떤 모습인지를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두 번째 정차지는 미노시였다. 미노시에 도착한 뒤 마을 입구의 관문인 미노교가 1916년에 완공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현대식 현수교라는 Harada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서 미노교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미노 와시라는 일본 수제 종이의 이야기로 옮겨 갔다. 여기서도 안내를 맡은 Hara-da 교수가 “미노에서 만들어지는 와시는 나가라강물과 주변 산의 깨끗한 지하수를 수백년 동안 유지·관리해온 마을 주민들의 노력 덕분에 원활한 생산과 우수한 품질이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미노의 와시 생산은 단순히 종이를 만드는 산업이 아니라, 강과 숲, 미노의 사람들이 오랜시간 동안 함께 만들어온 하나의 문화유산과도 같았다. 이 멋진 경험을 기억하고자 미노 와시로 만들어진 작은 색종이를 구입했다.
굉장히 일본스로운 이 색종이를 보면서 나무를 베고, 섬유를 추출하고, 강물을 끌어와 씻는 제지 과정을 위해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애써온 미노시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장소인 구조 하치만은 ‘물의 도시’라는 별명이 너무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하천 좌우로 조성된 이 마을은 몇 걸음만 걸어도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수로가 계속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은 샘물과 수로를 마을의 전통과도 같은 규칙과 자율적 통제에 따르며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를 안내했던 구조 하치만 출신의 해설자는 “이곳의 물은 상류에서 내려오는 깨끗한 강물과 용천수가 섞여 있으며, 주민들은 일정한 규칙을 정해 그 물을 생활용수와 소규모 관개 등에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구조 하치만의 독특하고도 독창적인 규칙은 물을 마시는 자리와 씻는 자리가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마을 입구에 설치된 전통적인 다단식 수조는 이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시설이었다. 해설자는 수조 앞에서 “구조 하치만에서는 샘물이 가장 먼저 나오는 첫 번째 칸의 물은 식수로 사용하고, 그 아래 두 번째 칸의 물로는 야채를 씻고, 마지막 세 번째 칸의 물로는 설거지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칸에 남은 음식 찌꺼기는 수조 안의 물고기들이 먹게 하여 사용한 물을 자연 정화한 뒤 강으로 흘려보냅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일본의 작은 마을에서 오랫동안 전통을 이어온 생활하수 정화시스템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멋진 아이디어에 나도 모르게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단식 수조의 첫 칸으로 흘러나오는 샘물을 손에 조금 담아 마셔 보았다. 차갑고 청량한 구조 하치만의 샘물로 나의 목을 적시는 순간 ‘한국에도 이런 마을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한국에서는 오염으로 인해 이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약수터를 생각하면서 조금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그림 18. 물의 도시 구조 하치만의 전경
그림 18. 물의 도시 구조 하치만의 전경
그림 19. 구조 하치만의 다단계 수조
그림 19. 구조 하치만의 다단계 수조

버스가 구조 하치만을 떠나 기후역으로 돌아오는 동안 일본의 하천 관리와 문화, 하천을 대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그리고 하천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가 계속 나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그런 고민에 빠진 나를 보면서 이번 세미나처럼 전 일정이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이토록 치밀하게 구성된 경우는 흔치 않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이번 제21차 한·일 생태공학세미나만큼이나 “연구와 실천을 통한 하천환경 복원과 하천 문화 유지”라는 주제에 대해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관련된 장소로 이동하며, 비슷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로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확신과도 같이 마음 한 곳에 자리 잡았다. 이번 세미나는 단순한 학술 발표회를 넘어 한·일 연구자들이 지난 20여 년간 쌓아온 신뢰와 고민을 서로의 연구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임과 동시에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에 대해 한 번 더 숙고하는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나의 대단히 짧은 영어 실력은 일본 연구자들과의 대화를 매번 어렵게 만들었고, 함께한 동료들의 통역에 기대야 하는 순간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를 향한 배려 속에 나눌 수 있었던 일본 연구자와의 짧은 대화, 작은 농담들이 묘하게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일본과 한국의 연구자들이 같은 하천을 연구하고 있지는 않지만, 비슷한 학문을 배우고, 닮은 고민을 품고, 닮은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만으로도 금방 친한 동료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견학을 마친 다음 날인 10월 26일 나고야 공항에서 김해공항으로 돌아오는 비행을 끝으로 세미나와 관련한 모든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3박 4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나는 처음 발을 디딘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하천과 함께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과 그를 위한 노력”을 현장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조금은 뒤늦게 쓰는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개인적인 소망을 하나 덧붙이자면, 바로 다음 회차의 세미나가 될지 또는 몇 년 뒤 개최하는 세미나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한층 더 성숙한 연구자료와 외국어 실력으로 한·일 생태공학 공동세미나 자리에 다시 한번 참석하여 일본의 연구자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연구에 꼭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시작의 첫 장면이, 50대에 들어선 미숙한 어느 연구자가 처음으로 일본 땅을 밟고 생면부지의 일본인 연구자들과 함께 일본의 하천과 문화를 탐방하며 걸어가던 모습이라면 조금 멋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림 20. 미노시 입구에서 일본의 연구자들과
그림 20. 미노시 입구에서 일본의 연구자들과
그림 21. 구조 하치만에서 마지막 단체 사진
그림 21. 구조 하치만에서 마지막 단체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