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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문학 산책

[수변정담] 정지용의 시론

정해옥 청명종합엔지니어링 회장

정해옥
청명종합엔지니어링 회장
papaenergy@naver.com

한 시인의 詩作品은 그 시인의 시정신이 형상화된 것이다 시정신은 곧 그 시인의 시적 지향성이며, 시관이라고 할 수도 있다 시관이란 “시는 무엇인가”에 대한 시인의 관점이다
시에 대한 관점은 시인의 시론으로 전개될 수도 있고, 시작품으로 형상화될 수도 있다 정지용(1902~1950)의 시론과 시작품을 통해 그의 시적 지향성의 실상을 알아볼 수 있다
그의 詩作활동 기간은 1926년에서 1941년까지의 약 15년간이다 1920년대는 한국문학사에서 낭만주의 시대였고, 1930년대부터는 순수문학과 함께 모더니즘 운동이 시작된 시기였다 이 기간 동안의 정지용이 그의 시론을 통해 전개된 시적 경향을 살펴본다
정지용은 1948년에 발표한 글에서 “국토와 인민에 흥미가 없는 문학을 순수하다고 하는 것이냐? 나는 사춘기에는 연애 대신 시를 썼으며 그 이후에는 일본 놈이 무서워서 산으로 바다로 회피하여 시를 썼는데 그것이 순수시인 소리를 듣게 된 내력”이라고 했다
하며 자신의 시작 행위까지도 부정하고 있다 ⌜조선시의 반성⌟이란 제목이나, ‘국토와 인민’이란 용어도, 그 당시의 이념적인 혼란기에 토로한 발언이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詩論이 아니라 時論이라고 한 것이다
영문학을 전공한 정지용이 영미 주지주의 문학론에 자극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정지용의 문장이나 어투, 용어의 한자적 표현 등은 서구 지향성과는 이질적이라 할 수 있다 모더니티가 아니라 전통의 느낌이 든다
정지용 시론의 정신적 기반은 儒學의 理氣論인 듯싶다 유학의 기본이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한다 그 내용이 바로 性情이다 이이李珥는 “天理가 사람에게 부여되는 것을 性이라 하고, 性이 氣와 합쳐서 일신을 주제하는 것을 마음”이라고 했다 이 마음이 작용하는 것을 情이라고 했다 性情이 자연 그대로 피어나면 좋지만 人爲가 가해지면 안 된다고 했다
性情이란 본시 타고난 것이니 시를 가질 수 있는 혹은 시를 읽어 맛들일 수 있는 은혜가 도시 性情의 타고 낳은 복으로 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정이 水性과 같아서 믿을 수 없는 노릇이니 담기는 그릇에 따라 모양을 달리 하며, 물감대로 빛깔이 변하는바가 온전히 성정이 물을 닮았다고 할 것이다 그 뿐이랴 잘못 담기어 停滯하고 보면 물도 썩어 독을 품을 수가 있는 것이 또한 물이 性情을 닮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中庸에서는 “性을 하늘이 내려준 것”이라 했고, 정지용은 ‘본시 타고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情이란 무엇인가 중용에서는 희로애락이라고 했다 이처럼 시와 관련하여 성정을 전제하고, 이 성정이 수성과 같다고 한다
이러한 논리는 주지적인 서구의 모더니티 지향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상징을 물과 같다고 한 것은 “담기는 그릇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며, 물감대로 빛깔이 변하는 바”와 같이, 내용은 같은 성정이지만, 그 표현형식에 따라 모양과 빛깔이 형형색색 다르다는 것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별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鄕愁⌟전문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별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鄕愁⌟전문

鄕愁는 1927년 ⌜조선지광⌟ 3월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일본 유학을 가기 전 고향에 잠시 들러 쓴 시다 ⌜카페 프란스⌟와 함께 초기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연 구분을 해서 모두 5연으로 구성된 것 같지만 “-그 것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한 행도 연으로 본다면 모두 10연으로 된 작품이다
고향을 그리워함이 향수다 그렇다면 분명히 전통 지향성의 발로로 그리움을 노래 한 것이다 김춘수는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를 후렴이 아닌 “cut와 cut를 montage하여 이을 고리”라 하고, “시의 효과는 전혀 montage의 효과에 달렸다”고 했다
정지용의 ⌜鄕愁⌟는 실제로 고향을 그리는 ‘homesickness’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대상은 인물이 주
가 된다 시 첫 연에선 고향의 사물, 둘째 연에선 아버지, 셋째 연에선 유년의 꿈, 넷째 연에선 누이와 아내,끝 연에선 다시 공간적인 이미지로 구성되었다
여기서 보면, 아버지와 누이, 그리고 아내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 있다 이에 대해 김휘정은 “‘금빛과 게으른’이 지향하는 세계는 낭만적인 이상세계를 지시한다
그러한 세계 속에 가족의 모습(아버지, 누이, 아내)은 자연스럽다”고 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어머니가 없다 이것도 주지주의자의 ‘鄕愁’ 때문일까 왜 어머니가 빠졌을까 그것이 의문으로 남는다
정지용은 전통 지향성에만 치우친 보수주의자도 아니요, 모더니티 지향성에 치우친 모더니즘 시인만도
아니다 그의 시적 표현에는 진보적인 모더니티 지향성이며, 정신세계의 넓이와 깊이에 대해서는 먼 동양의 경전에까지 관심을 둔 전통 지향성을 견지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모더니티 지향성은 시적 표현을 위한 형태주의적 관심이었고, 전통 지향성도 ‘시의 위의’를 위한 관심이었다 그는 진보를 위한 혁신주의자도 아니요, 보수를 위한 전통주의자도 아니었다 오직 새로운 시를 위한 천재 시인이었다

참고문헌; 월간문학(2019.4 김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