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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문학 산책

[수변정담] 인생의 팔 할

정해옥 청명종합엔지니어링 회장

정해옥
청명종합엔지니어링 회장
papaenergy@naver.com

인생의 팔 할이란 자신의 대부분을 지배한 인생관, 가치관, 철학관을 말한다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하거나 유명한 사람도 아닌 일반 시민들에겐 무슨 거창한 지배관이 있겠는가 시류에 휘둘리고, 이 눈치 저 눈치, 먹고 살 궁리만 하다가 그럭저럭 견뎌온 것이 우리들 인생이다
성공의 개념은 수정되어야 한다 넓은 아파트, 큰 차를 성공의 잣대로 인식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속물적 근성이다 이것은 천민자본주의다 자기 분야의 업적, 위대한 발명, 정의를 위한 저항, 사회발전을 위한 봉사활동, 경제적 약자를 위한 기부, 재능 나눔, 독서량, 지식, 명예, 작품, 준법정신, 윤리적, 도덕적으로 살았는가 등의 순개념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어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으련다

서정주의 시 ⌜자화상⌟전문

이 작품은 시인이 23세 되던 1937년에 지은 것으로 시집 ⟪화사집⟪에 실려 있다
회고와 성찰에 따른 삶의 의지를 읊은 매우 상징적인 작품이다 여기서 바람은 젊음의 방황과 시련을 뜻한다 젊은 날의 시인은 팔 할을 그렇게 살았다 일제치하의 암흑기를….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스페인의 작은 도시 말라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화가를 꿈꾸는 미술 교사였다 아들이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이자 자신의 꿈을 접고 아들을 프랑스로 보냈다
스무 살이 넘으면서 피카소는 파리의 몽마르트로로 가서 아주 작은 작업실을 얻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몽마르트로는 당시나 지금이나 미술가로서 성공하고자 하는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이곳에서 피카소는 지독한 가난과 싸우면서 오로지 작업에만 몰두했다 작업실은 여름이면 찌는 듯이 더웠고, 겨울이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이때 피카소는 다른 집 앞에 놓인 우유를 훔쳐 먹기도 했다 외국인이라 무시도 많이 당했다
훗날 ⌜아비뇽의 아가씨⌟라는 작품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입체파의 거장으로 서양미술사에서 우뚝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그는 같은 화가들 이외에도 아폴리네르 같은 시인들과 교류를 가지며,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는 독서에 열중하기도 하였다
피카소는 젊은 시절 8할이 가난했다 그 가난이 인생의 8할을 성공시켰다 2할의 가능성으로 8할을 성공시켰다
피카소뿐 아니라 고흐, 고갱, 밀레, 이중섭, 박수근 등 유명 화가들의 삶은 극도로 궁핍했다 그밖에도 도스또예프스키, 최학송, 이정환과 같은 작가의 삶도 가난의 연속이었다 예술가들의 가난한 생활상은 작품의 모티프가 되었다 소재가 되었다 성공의 바탕이 되었다
철학자 니체는 “사는 것은 고통 받는 것이고, 살아남는 것은 고통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삶은 곧 고통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고통 없이 살아온 사람이 있을까 인생의 8할이 고통이라도 2할의 꿈과 희망이 있기 때문에 견디고 살아가는 것이다 피카소가 그랬던 것처럼……
그래도 2할이 의미가 있는 것은 크기는 작아도 그 안에는 즐거움과 기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먼 옛날부터 존재했거나 현재 진행형이기도하다 먼 미래에서 던져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4차원의 세계처럼 그것들은 뒤죽박죽인 시간 속에서 서로 영향을 미치고 위치를 바꾸면서 소멸되거나 새로이 만들어 지기도 한다 그 2할의 비중 덕분에 8할의 일상이 빛날 수 있다 넘어지고, 찔리고, 피나고, 아프고, 그러다가 아무는 일상의 파편들을 보석처럼 소중히 여기게 만들어 준다
2할의 꿈과 희망이 커져 8할의 고난을 집어삼킬 수도 있다 8:2는 늘 열려있다 들고남이 자유롭다 그 끊임없는 교차, 들락거림의 과정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알아차리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묘비명처럼 아무 것도 욕망하는 바가 없는, 원하는 것이 없는 완벽한 자유, 그것은 8:2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일 것이다
⌜모비딕⌟의 작가 멜빌은 인생의 8할이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에서 보낸 그 엄청난 시간과 열정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로 불후의 명작들은 도서관에서 탄생되었다
그는 자석을 따라 움직이는 쇳가루처럼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의 냄새, 향기, 감촉을 삼시새끼 밥 같이 먹었다 책이 발산하는 빛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고, 미소 지으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위안과 솟아오르는 힘을 느꼈으리라
내 인생의 팔 할은 공부였다 그러나 학업성적을 올리기 위한 공부로는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다 문학에 대한 동경은 결핍으로 이어졌다 결핍과 꿈은 동의어다 꿈은 결핍 위에 둥지를 튼다 무엇이 모자랄 때 어딘가 허탈할 때 기둥을 세우고 구멍을 메꾸는 것이 꿈이다
인생의 팔 할이 풍요, 안락했다면 그것은 그냥 그러할 뿐, 성취의 과정도 기쁨도 없다 창조하는 힘을 더할 수 없다 발견의 보람도 느끼지 못한다 안이함과 편안함은 특별한 것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있을 것이 있다고 여긴다 처음부터 있었고 영원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무런 감사도 감격도 주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왜 어릴 때부터 시를 쓰겠다는 꿈을 끈질기게 꾸어왔을까 학교 대표로 나가서 한 번도 상을 받지 못했으면서…. 그러다가 사회인이 된 한참 후에 어릴 때 꾸었던 잠재의식이 깨어났다 시를 써서 어떻게, 무슨 결핍의 허방을 메우려고 했을까 모를 일이다
당신을 키운 팔 할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생관, 가치관, 철학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혼자가 아니다 누군가에 의해 영향을 주고 받는다 부모님, 형제자매, 선생님의 가르침, 타고난 재능에 따라 인생의 팔 할이 달라질 것이다
여행가는 8할이 여행이다 교수는 가르치는 일이다 작가는 글 쓰는 일이다 의사는 치료하는 일이다 등
산가는 산을 오르는 일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인생의 8할에도 귀천이 없다 각자의 8할은 소중하다 위대하다 존중되어야 한다
인생의 8할은 각자가 다를 것이다 아버지다 어머니다 형님이다 누님이다 남편이다 아내다 만남이다 사
랑이다 이별이다 기쁨이다 슬픔이다 아쉬움이다 안타까움이다 희망이다 기다림이다 외로움이다 그리움이다 어느 봄날의 긴 꿈이다…….
아니다 잘 모르겠다

참고문헌; 한국문인(2019 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