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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문학 산책

[물에 얽힌 옛이야기]
산이 입을 벌려 상자를 삼키고,
강이 입을 벌려 진주를 토하다

신현배 시인, 아동문학가

신현배
시인, 아동문학가
4201708@hanmail.net

옛날 경기도 양주 땅에 황 참봉이란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아들이 둘 있는데, 어느 날 아들 형제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갑자기 세상을 떴습니다. 그러자 두 아들은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놓고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상대보다 더 많은 재산을 차지하려고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내가 장남이니까 이 집의 기둥이야. 장남이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몽땅 물려받는
거라고. 너는 내가 특별히 생각해서 논과 밭 몇 마지기를 넘겨줄 테니 그리 알아라.”
“무슨 소리야? 아버지는 형보다 나를 더 사랑했어.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자식이 더 많은 재산을 물려받는 거야.”
형과 동생은 물러서지 않고 팽팽히 맞섰습니다. 서로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어머니는 두 아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그들을 나무랐습니다.
“아버지 장례를 치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재산 싸움을 하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어머니는 중재안을 내놓았습니다.
“너희들 싸우지 말고 차라리 사또 나리께 맡겨라. 재산을 공평하게 나눠 달라고.” 고을 사또는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판결을 잘하기로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형제는 사또를 찾아가 자기들의 사정을 아뢰었습니다.
사또는 형과 아우가 하는 말을 말없이 듣고는 붓을 들어 종이에 몇 자 적었습니다. 그러고는 종이를 넘겨주며 말했습니다.
“이것은 판결문이다. 무슨 뜻인지 잘 읽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라.”
형제는 종이에 적힌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산이 입을 벌려 상자를 삼키고, 강이 입을 벌려 진주를 토하다.’
형과 동생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사또 나리, 이게 무슨 뜻입니까?”
“판결문이라 하셨는데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형제가 이렇게 말하자 사또는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하늘이 맺어 주어야 형제로 태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형제간의 우애는 현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거지. 형제간의 우애를 잃지 않고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라는 취지에서 이 판결문을 적어 주었으니, 곰곰이 따져 보고 깊이 새겨 보아라.”
형제는 집으로 돌아와 판결문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형제는 판결문을 들고 마을 훈장을 찾아갔습니다.
“저희 형제의 재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사또 나리를 찾아갔더니, 판결문이라고 이런 글을 써 주셨습니다. 하지만 판결문을 읽고 또 읽어도 그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훈장님께서 속뜻을 풀어 주십시오.”
훈장은 판결문을 읽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고을 사또는 역시 지혜롭고 현명한 분이로군. 내가 속뜻을 풀어 줄 테니 술이나 한 잔 하시게나.” 훈장은 부인에게 술상을 차리게 하고는 술상 앞에서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산이 입을 벌려 상자를 삼키고, 강이 입을 벌려 진주를 토하다.’ 이 말 속에는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한번 들어 보시겠나?”
훈장은 술잔을 들어 목을 축이고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옛날에 가난하지만 우애가 깊은 형제가 있었어. 이들은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형이 소문난 효자여서 어머니를 잘 섬겼지.
어느 날 형이 잔칫집에 갔는데,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음식상이 나온 거야. 하지만 형은 산해진미를 보고도 수저를 들지 않았어. 어머니가 병에 걸려 누워 있는데, 혼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던 거야.
잔칫집 주인은 형이 왜 음식을 들지 않는지 알아채고는 이렇게 말했어.
“어머니 드실 음식은 내가 따로 챙겨 줄 테니, 아무 염려 말고 음식을 마음껏 드시게나.”
그제야 형은 수저를 들어 음식을 먹기 시작했지.
그런데 잔치가 끝난 뒤 문제가 생겼어. 음식이 어찌나 맛있는지 조금도 남기지 않고 모두 먹어치운 거야.잔칫집 주인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
“내가 실수했네. 미리 음식을 챙겨 놓는 건데. 손님이 너무 많아 음식이 동이 나 버렸어. 자네 어머니가 드실 음식은 다음에 따로 준비할 테니 연락하면 꼭 우리 집에 들르게나.”
잔칫집을 나온 형은 발걸음이 무거웠어. 어머니는 병상에 누워 계시는데 자신만 배불리 먹었다는 자책감이 들었거든. 그래서 그는 집을 향해 산길을 걸어오다가 손가락을 입에 넣었어. 먹은 것을 모두 토해 내려고 말이야.
바로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토악질을 하는데 뱃속에서 됫박만한 상자가 튀어나온 거야.
“아니, 왜 이게 나왔지?”
형은 깜짝 놀라 상자를 열어 보았어. 상자 속에는 국수 한 그릇이 들어 있는 거야. 국수는 잔칫집에서 그가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이었지.
“국수는 하느님이 어머니께 드리라고 주신 거로구나.”
형은 하늘을 향해 절을 하고는 상자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어.
형은 상을 펴고 상자를 열어 국수를 꺼냈어. 상자에서는 국수뿐만 아니라 떡도 나오고 과일도 나왔지. 형은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려 어머니를 모실 수 있었단다.
그제야 형은 깨달았어.
“이 상자는 하느님이 어머니를 잘 모시라고 주신 거야.”
이날부터 형은 어머니를 더욱 정성껏 모셨다는구나.
어느 날 동생이 상자 속에 옆전 한 닢을 넣어 보았어. 그러고는 뚜껑을 닫았다가 다시 열어 보니 상자 속에 엽전이 가득 들어 있는 거야. 동생은 깜짝 놀랐어.
‘다른 것 필요 없이 이 상자만 있으면 큰 부자가 될 수 있구나.’
동생은 상자를 앞에 두고 형에게 말했어.
“우리 집에 있는 논이며 밭이며 모든 재산은 형이 가져가슈. 나는 이 상자만 있으면 되니까.”
형은 동생의 말을 듣지 않았어. 상자가 요술 상자여서 동전 한 닢을 넣으면 동전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것을 형도 이미 알고 있었거든. 이 상자만 있으면 큰 부자가 될 텐데, 동생한테 상자를 양보할 수가 없었지.
“무슨 소리야? 이 상자를 네가 왜 가져가? 이 상자를 얻은 것은 나야.”
“누가 얻었든 우리 집에 왔으면 상자는 공동 재산이야. 재산 분배를 미리 해서 상자를 내가 갖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형제는 상자를 놓고 싸웠어. 상대에게 양보하지 않고 상자를 서로 갖겠다고 고집을 부렸지.
결론이 나지 않자 형이 말했어.
“이 상자는 뒷산에서 얻었으니 산에게 물어 보자. 누가 상자를 가져야 하냐고.”
“좋아.”
형제는 상자를 들고 뒷산으로 올라갔어.
“이 산에는 두 개의 골짜기가 있지? 여기서 상자를 굴려 왼쪽 골짜기로 가면 네가, 오른쪽 골짜기로 가면 내가 상자를 갖도록 하자.”
“좋아. 그렇게 해.”
형은 산등성이에서 상자를 굴렸어. 그러자 상자는 비탈길을 데굴데굴 굴러 내려갔지. 그런데 어느 순간 상자가 자취를 감추었어. 산등성이가 입을 쩍 벌리더니 상자를 삼켜 버린 거야.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딱 붙어 버렸지. 그래서 나온 말이 ‘산이 입을 벌려 상자를 삼키다’야.
이야기를 하나 더 할까? ‘강이 입을 벌려 진주를 토하다.’라는 말이 나오게 된 이야기야.
옛날 어느 강변 마을에 우애로운 형제가 살았어. 어느 날 동생은 형이 몸져누웠다는 소식을 듣고 형네 집을 찾아갔어. 형은 안방에 누워 동생을 맞이했지.
“형님, 쉬지 않고 일만 하시더니 병이 나셨군요. 드시고 싶은 것이 있나요? 제가 꼭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형이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어.
“잉어를 잡아다 줄 수 없겠나? 잉어를 푹 고아 먹으면 벌떡 일어날 것 같아.”
“그러세요? 당장 가서 잉어를 잡아 오겠습니다.”
동생은 낚싯대를 들고 강가로 가서 팔뚝만한 잉어 한 마리를 낚았어. 그러고는 잉어를 푹 고아 형에게 가져다주었지.
“얼른 드시고 일어나세요. 형님이 건강하셔야 제 마음이 편안합니다.”
형은 동생이 가져다준 잉어를 맛있게 먹었어.
그런데 음식을 거의 다 비웠을 때 그릇 바닥에 진주가 있는 거야. 형제는 깜짝 놀랐지.
형은 진주를 건져 동생에게 건네며 말했어.
“네가 잉어를 낚았으니 진주는 네 것이야. 어서 받아라.”
동생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어.
“아닙니다. 이 잉어는 형님에게 드린 것이니 진주는 형님 것이지요.”
형제는 서로 진주를 갖지 않겠다고 싸웠어. 하지만 아무리 싸워도 결론이 나지 않았지.
그러자 형은 진주를 들고 동생과 함께 강가로 갔어.
“우리가 서로 양보해도 진주를 누군가 가지면 아까운 생각이 들겠지. 그러니 진주를 강에 던져 버리자.” “좋습니다. 재물 때문에 우리 형제간의 우애가 깨지면 안 되지요.”
형은 진주를 강물 속에 풍덩 빠뜨렸어. 그러고는 근심을 덜은 듯 형제는 활짝 웃으며 발길을 돌렸지.바로 그때 강이 입을 쩍 벌리더니 커다란 잉어 한 마리를 형제 앞으로 던지는 거야.
형제는 그 잉어를 가져다가 함께 나누어 먹었단다. 그런데 음식을 먹다 보니 형과 동생의 그릇에 진주가 하나씩 들어 있는 거야. 형제는 사이좋게 진주를 하나씩 나누어 가졌고, 더욱 우애가 깊어졌지. 이때나온 말이 ‘강이 입을 벌려 진주를 토하다.’야.
훈장의 이야기를 들은 형제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졌습니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훈장에게 말했습니다. “저희들이 잘못했습니다. 재물에 눈이 어두워 우애를 깨뜨릴 뻔했어요.”
“훈장님이 들려주신 이야기의 교훈을 제대로 알았습니다. 재물을 가지고 형제가 싸우면 하늘이 재물도 빼앗아 가는데, 우애가 깊으면 재물이 오히려 늘어난다는……. 앞으로는 재산 문제로 싸우지 않겠습니다.”
고을 사또의 판결문 덕분에 깨달음을 얻은 형제는 재산 문제로 싸우지 않고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평생 우애를 나누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